한국 대통령이 해야 할 일물론, 지금 이런 모든 문제에 관해서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확고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철저한
기초연구가 아직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주 기초적인 자료조차 축적되어 있지 못하다.
지난번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 때를 되돌아보자. 한쪽에서는 대운하를
건설하더라도 수질오염문제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 측에서는 대단히 심각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대운하 건설이 어느 정도의 수질오염을 초래할지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엄밀한 대답을 기대하기에는 우리나라에 축적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많은
환경전문가들이 한탄하였다. 수질오염을 예측하는
모형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그 모형에 집어넣을 기초적 자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한심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초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먼저 떠든다면
자연히 전문가들도 논쟁에 휘말려들게 된다.
지난번 대운하 건설을 둘러싼 논쟁 때에도 여러 차례의 찬반토론은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로 얼룩졌을뿐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던 소모전이었다. 일방적 주장 그리고 "좀 더 잘 알고 나서 얘기해라"라든가 심지어 "미국에 가서 공부 좀 더해라" 등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묵살하는 언사가 난무하였다. 그렇게 상대방을 묵살할 수 있을 정도로 대운하에 대한 주장이 과학적 사실에 확고하게 정초하고 있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에 대하여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이 논쟁이 잘 마무리되도록 중립적 입장에 서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전문가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다.
"시간이 없다"는 대통령 말의 허구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적대적 논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상처만 남길 뿐이다. 몇 년 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카네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나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 논쟁은
시간낭비이다.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승복하거나 논쟁을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화를 내면서 학문을 하는 것은 비참한 경험이다." 그는 현행 과학논쟁의 한 형태인 비판-대응-재대응의 틀 대신에 적대적 공동연구(adversarial collaboration)를 시도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토로하였다. 말 그대로 적대적 공동연구란 큰 견해차이로 적대관계에 있는 전문가들이 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공동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것인데, 제3의 중립적 인사가 자료수집과 연구수행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말한다.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우리 학계에서도 카네만 교수가 말하는 적대적 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의 경우에도 관련 전문가들이 소모적 논쟁을 하는 대신 적대적 공동연구를 통해서 쟁점을 잘 정리하고 공동으로 조사하고 자료를 발굴하며 그 위에 이론을 잘 적용한다면, 견해의 차이를 크게 좁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대통령도 좀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관련 전문가들이 1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에 대하여 적대적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싶다.
방송대담 때도 대통령은 자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 사업과 4대강 사업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시대착오적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빨리빨리'가 주효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빨리빨리'는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빨리 갈 수 없고, 빨리 가서도 안 되는 '차근차근'의 시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