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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떤 학문인가? (프레시안 연재 1)
글 모음 | 2009/01/05 21:23
 

경제학이라는 학문

1. 경제학은 깡패 학문

범죄행위의 손익계산

   경제학이라고 하면 돈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돈벌이에 관해서는 경제학보다는 경영학이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경영학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있어도 경제학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에서 핵심이 되는 말을 하나만 집어내라고 하면 아마도 ‘손익계산’이나 ‘수지타산’ 혹은 ‘득과 실의 비교’일 것이다. 인간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철저하게 비교하면서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존재라고 경제학은 전제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은 자신의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익계산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서도 날이 갈수록 각종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구 170명당 한 명이 감옥소에 앉아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범죄가 기승을 부릴까?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범죄가 아주 수지맞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범행에서 얻을 이익을 생각해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을 따져본다. 범행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 그리고 검거될 확률, 검거되었을 경우 당하게 될 손실 등 가능한 모든 것을 짚어본다. 잡혔을 경우 당하게 될 손실도 다각도로 생각해볼 것이다.  그냥 감옥소에 갈 수도 있고,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빠져나갈 수도 있으며, 비싼 변호사를 사서 낮은 형량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가능성을 놓고 득과 실을 비교해본다음 충분히 수지가 맞는다는 결론에 이르면 범죄자는 자신의 계획을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이런 손익계산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득과 실의 비교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돈으로 환산된 득실비교가 경제학의 기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돈벌이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경제학은 이와 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득과 실을 비교해가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과연 그럴까? 심리학자들이나 범죄학자들은 경제학의 이런 주장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범인들은 이것저것 계산할 틈도 없이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강간범이 사전에 득과 실을 꼼꼼히 계산해보고 나서 범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살인이나 폭력 등 범행을 감행할 때에는 범인은 이미 사리를 판단 할 능력을 상실한 흥분 상태에 있다고 한다. 사리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은 범죄를 잘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연구하는 경제학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는 순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님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그런 다음에는 범죄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러나 어떻든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날로 늘어가는 범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들의 대답 역시 간단하다. 범죄가 수지맞지 않는 장사가 되게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예를 들면, 검거될 확률을 대폭 높인다든가, 형량을 대폭 높인다든가, 등. 말하자면 치안을 강화해서 죄의 값을 확실하게 톡톡히 치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총기규제 강화나 치안강화가 장기적으로 범죄율을 낮추는데 그리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경제학자의 범죄이론에 결정적 흠집을 낸 아주 이상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날로 높아만 가던 미국의 범죄율이 1990년부터 갑자기 뚝 떨어지더니 이 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의 말대로 1990년부터 범죄에 대한 단속이 대폭 강화된 것도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 총기규제가 약간 강화되었을 뿐이다. 경기가 좋아져서 범죄율이 그렇게 낮아졌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경기가 나빠지는데도 불구하고 범죄율이 높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든 경제학자의 범죄이론뿐만 아니라 기존의 그 어떤 범죄 이론도 1990년대 미국의 범죄율 급락을 설명하지 못했다. 오직 한 이론만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이 이상한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유명한 “낙태 합법화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1)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하였는데, 허용 시기는 주마다 달랐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들어났다.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한 주에서는 15년 내지 20년 후에 거의 예외 없이 범죄율이 뚝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낙태율이 높을수록 범죄율의 하락폭도 컸다.2) 낙태의 합법화 시기가 주마다 달랐기 때문에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에 미치는 효과를 더욱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낙태의 합법화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 사회의 범죄율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연구결과들도 나왔다.

   그러면 왜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추게 되었을까?  낙태의 합법화가 혼외출산을 줄임으로써 잠재적 범죄자 집단의 규모를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혼외출산과 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는 많이 있다. 혼외출산의 대부분이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들인데, 통계적으로 보면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혼외출산과 범죄율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혼외출산이 감소하면 범죄율도 낮아질 것이다. 실제로 서구사회에서 혼외출산을 감소시키는데 큰 효과를 본 정책은 낙태의 합법화였다고 한다.


가정생활의 손익계산

   선진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가정파탄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은 강력한 주장을 준비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서, 결혼부부들이 이혼하는 이유는 결혼생활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 분명히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다. 이렇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하나하나 꼽아보고 계산기를 두드려봐서 밑진다는 결론에 이르면 자연히 이혼하게 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논리다. 이혼율이 높아진 이유는, 이와 같이 계산기를 두드려 봤을 때 밑지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부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옛날 부부들은 가정지키기를 의무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참고 살았다는데, 그때는 계산기가 없어서 그랬을까?  왜 요즈음의 젊은 부부들은 결혼생활에 대해서 유난히 계산기를 자주 두드리게 되었는지, 왜 밑지는 결혼생활이 갑자기 늘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은 별로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의 이유도 경제학적으로는 간단하다.  자녀를 가지는 일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를 가짐으로 인한 즐거움에 비해서 양육비라든가 얽매임 등으로 인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자녀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것이다.  탁아소를 많이 세우고, 자녀양육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출산휴가를 강제적으로 실시하고, 등. 이 대부분이 결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주어야 한다. 정부가 가정의 뒤치다꺼리까지 맡아주어야 하는 것이 요즈음 세상이다. 옛날에는 아이보기나 산후조리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 이웃 들이 거들어주었던 일들이요, 사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가족애라든가 따뜻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었고 인간다운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가정의 구조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 결손가정, 독신가정, 동거가정, 동성가정 등 가정의 형태도 무척 다양해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가정의 급격한 변모를 매우 걱정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동일한 가정변모 현상에 대해서도 ‘가정해체’라든가 ‘결손가정’이라는 부정적 표현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유연화’라든가 ‘열린 가족’이라는 부드러운 표현도 있다.  확실히 나홀로 가족(독신가족)이나 편부모 가족, 재혼가족, 계약결혼, 단순동거가족, 동성애 가족 등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 가족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자는 주장이 특히 여성운동단체들 사이에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장에는 각 개인이 독신으로 살든 말든, 결혼하든 이혼하든, 재혼하든 계약결혼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합리적 결정에 맡겨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이런 가정형태의 다양화가 개인의 자유를 크게 신장시키는 것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 이제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 뒷바라지나 육아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를 즐기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독신의 자유를 즐기는 남자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결혼해서 살다가도 수틀리면 가차 없이 헤어지는 자유도 보장된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자유스런 결정에 맡기다보니 가정의 형태가 이렇게 다양화하고 가정해체가 가속화되며 결손가정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3)

   경제학자들은 가정형태의 다양화가 상당한 정도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경제학적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혼경제학”이라든가 “결혼시장”이라는 단어가 그런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4) 돈 많고 학력이 높은 남자나 예쁘고 섹시한 여자는 결혼시장에서 좋은 상품이요 따라서 잘 팔린다. 요즈음의 젊은 여자들은 살 빼기 위해서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예뻐 보이기 위해서 얼굴과 몸 뜯어고치기까지 서슴치 않는데,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이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이 가정해체나 가족 유연화를 지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개인의 합리적 계산을 존중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이런 현상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원용될 여지는 많이 있다.  하지만, 양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정상적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적 연구도 있다.  케리 베커교수의 이타심에 대한 연구가 그 중의 하나이다. 그에 의하면 양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정상적 가정은 이타심의 산실이요 우리 사회에서 이타심이 퍼져나가는 원천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는 이타심을 가지고 가족 모두의 복지를 늘 염두에 두면서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간다. 원래 가정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마치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적절히 교통정리 하듯이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 어린 보살핌이 가족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적절히 교통정리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 구성원 그 어느 누구도 이기적으로 행동해봐야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서 형이 제 욕심만 생각하고 동생을 살살 꼬여서 만 원을 뺏어갔다고 하자. 그러면 부모는 동생의 용돈을 만원 올려주는 대신 형의 용돈을 만 원 삭감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형은 얻는 것이 없다. 따라서 형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그럴 것이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서 동생이 불량배들에게 용돈을 뺏겨서 울고 있다고 하자.  이것을 보고 측은하게 생각한 형이 동생을 도와주기 위해서 동생에게 2만 원을 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부모는 그 형이 기특해서 용돈을 2만원 이상 올려줄 것이다.  결국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익이다. 형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 모두가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가정이란 보통 이런 것이다.

   물론 용돈에 관해서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 그리고 복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형이 동생의 밥을 뺏어 먹어서 동생이 배를 곯고 있다고 하자. 이것을 보고 가만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는 당장 그 동생에게 밥을 주는 반면, 형은 뺏어 먹은 만큼 밥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배고파하는 동생에게 형이 자기의 빵을 주고 자신은 쫄쫄 굶었다고 하자. 이것을 보고 가만있을 부모가 또 어디 있겠는가.  부모는 당장 그 형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예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부모가 가족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면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자신들도 다른 가족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경제학자들이 늘 그렇듯이 베커교수 역시 이런 상식적인 얘기를 복잡한 수학을 이용해서 하나의 정리(定理)로 정리하였다. 이 정리가 유명한 “불량아 정리“다.5) 만일 부모가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불량아 정리“와 나란히 베커교수가 증명한 “시기심에 대한 정리“가 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만일 부모가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해주지 않는다면(다시 말해서 이타심의 중심축이 없다면), 가족들 사이의 시기심이나 이기심은 가족 전체의 공멸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정리에 베커교수는 “불량한 부모는 자녀를 불량하게 만든다.”는 보충설명을 달았다. 이  두 정리에서 베커교수가 보인 것은,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의 이론적 틀을 가지고도 이타심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다는 것이다.

   베커교수는 경제학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는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타심에 관한 그의 이론을 사회 전체에 확대 적용하면, 소수의 중요한 사람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사회 전체도 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가 이타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사회 지도층만 헌신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일해 주어도 사회는 잘 돌아갈 수 있다.


손익계산과 정치

   최근 정치 현상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들(이른바 정치경제학 학자들)은 정치가나 정부에 대해서도 손익계산의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일반국민들은 정치가나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이 정치경제학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들에 따르면, 시장의 소비자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치가나 관료 역시 자신의 손익계산에 따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가나 관료의 행태는 장바닥 장사꾼의 그것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장사꾼은 공익을 들먹거리지 않지만, 정치가와 관료는 늘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뒷구멍으로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 정치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각 부처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한다. 즉, 정부의 각 부처는 국민의 이익이 아닌, 부처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정부의 부처이기주의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대체로 보면 경제학자들은 공익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공익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익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이익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국민 각자가 자신의 손익계산을 바탕으로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내버려두면 공익은 저절로 증진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별도로 공익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치가나 관료의 행태가 장바닥에서의 소비자와 기업의 행태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은 일찍이 미국 수도권 대학의 경제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소위 공공선택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쉽게 말해서 이 이론은 경제학의 시각에서 정치판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현실을 좀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미국 수도권 경제학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관료들과 어울리면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주 현실적 이론이다. 어떻든, 국민이 끊임없이 자신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고 정치가와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늘 감독하지 않으면 이들은 곧장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다는 정치경제학자들의 경고만큼은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원래 경제학은 시장을 주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그런데 공공선택이론가들은 왜 굳이 시장이 아닌, 정치판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는 외도를 저질렀을까?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뷰케난은 그 외도의 의도를 솔직히 밝히고 있다.  요컨대, 시장의 원리가 정치판에 확대 적용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6)  이런 외도를 한 끝에 약 반세기 전에 공공선택이론가들은 오늘날에 듣기에도 민망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제안의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예를 들면, 투표권의 판매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듯이 사회적인 이슈를 투표로 결정하는 경우 다수의 횡포가 우려된다.  투표에서 진 사람들은 일방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지난 여러 차례의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는데, 예컨대 진보진영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보수진영 사람들은 5년 동안 날마다 싫어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울분을 삭여야 한다.  보수진영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만일, 투표권을 자유로이 사고팔게 허용한다면 그런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 없이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고 공공선택이론가들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갑을 대단히 혐오하는 사람들은 갑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대가를 주고 표를 매수한 다음 자신들이 지지하는 을에게 표를 몰아서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다고 하자. 갑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돈을 받아서 좋고, 갑을 혐오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당선시켜서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이와 같이 자발적 거래를 통해 이해당사자 모두의 이익이 증진되는 것, 이것이 곧 경제학이 금과옥조로 삼는 시장원리의 핵심이다. 투표권의 거래는 이런 시장의 원리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공공선택이론가의 제안 사유다.


손익계산과 환경오염

   요즈음에는 덜 하지만, 1980년대에만 하더라도 경제학자들이 환경오염문제에 대하여 발언을 하면 모두들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래서 그런지 1990년대 초 환경문제를 경제학적으로 다룬 『녹색경제학』이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여러 주요 일간신문들이 크게 소개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자들, 특히 자연과학자들은 환경문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환경오염은 어디까지나 자연현상에 관한 것인데, 경제학자들이 대자연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환경문제를 떠들 수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물론, 자연과학자들의 이런 시큰둥한 반응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들이 보기에, 경제학자들은 대자연의 그 복잡함, 오묘함, 그리고  신비함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흰소리만 하는 경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은 환경오염이 경제활동의 결과라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하기 일쑤다. 경제활동은 경제학의 본령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활동이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면, 환경문제는 당연히 경제학의 연구대상이 된다. 실은, 환경문제가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인 1세기 전부터 서구에서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환경오염이 심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가 아주 돈벌이가 잘 되기 때문이다.  수도권 2천만 시민의 상수원인 팔당 근처를 가보면 러브호텔이니 고급 레스토랑이니 생선매운탕 집 등 수없이 많은 업소들이 강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영업 중이다. 물론, 이들 모두 손익계산을 해보고 나서 충분히 수지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영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 손익계산을 하느냐에 주목한다. 이 업소들이 마구 방출하는 폐수가 상수원을 더럽히는 원인이 되고 있고 그래서 수도권의 2천 만 시민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게 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손익계산을 할 때는 오직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과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비용만 따져볼 뿐 그런 수질오염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렇게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손익계산에서 무시되는 제3자의 피해를 경제학자들은 ‘외부효과’라고 부르고 환경오염문제는 외부효과 문제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환경오염문제가 개인의 잘못된 손익계산 때문이라면, 올바른 손익계산을 하도록 바로 잡아주는 것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법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서, 한강의 오염으로 인해서 수도권 2천만 시민이 당하는 피해를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소들이 배출하는 폐수에 대하여 톤당 만원을 징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폐수배출량에 이 요금을 곱한 만큼 폐수배출 업소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게 되므로 이들은 이 요금을 계산서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 요금을 배출부과금이라고 하는데, 폐수를 많이 배출할수록 배출부과금 납부액은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에 각 업소는 자신의 폐수배출량을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어떤 식으로 폐수배출량을 줄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각 업소들이 알아서 할 사항이다. 영업규모를 줄일 수도 있고, 물을 덜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할 수도 있고 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할 수도 있다. 어떻든 그래서 폐수배출량이 줄어들었다면, 이것은 결과적으로 각 업소들이 제3자의 수질오염 피해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계산서에 충분히 반영해서 영업한 것이나 진배없다.

   이와 같이 배출부과금을 징수하는 방법은 폐수뿐만 아니라 예컨대 각종 중금속이나 대기오염물질을 포함한 여러 가지 환경오염물질에 폭넓게 적용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각 배출업소가 어떤 환경오염물질을 어떻게 얼마만큼씩 배출하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서 환경오염물질 배출양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 많은 배출업소들을 상대로 배출량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 자체가 방대한 일이기도 하지만, 배출업소들은 나름대로 온갖 은밀한 방법으로 환경오염물질의 배출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윤리학자나 환경운동가들이 배출부과금에 대하여 제기하는 또 한 가지 큰 불만을 소위 도덕불감증이다. 배출부과금을 납부한 상수원 오염업체들은 돈을 냈으니 폐수를 배출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돈으로 샀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경오염 업체들은 아주 떳떳한 마음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하게 된다. 돈만 내면 그만이 아니냐는 사고방식이 퍼지게 되면 장기적으로 환경오염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유아원에 대한 심리학자의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저녁 정해진 시간에 부모들이 유아원에 와서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만 유아원 직원들도 퇴근할 수 있는데,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부모들이 늘 있어서 유아원의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늦게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에게는 벌금을 부과하였다.  그랬더니 시간을 지키지 않는 부모의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종전보다 더 크게 늘어났다.  심리학자가 그 이유를 캐본 결과, 돈만 내면 되는데 좀 늦으면 어떠냐는 태도가 부모들의 행동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어야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래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은 금전만능주의 풍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역겹게 생각한다.

   배출부과금 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학자들은 아예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시장에서 이 권리를 사고팔게 허용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환경윤리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을 아연 실색케 하였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제시된 배출권 거래제도가 바로 그런 취지의 제도이다. 많은 환경보전론자나 환경운동가들이 지구온난화가 지구상에서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앙이라고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은 이산화탄소의 대량 배출인데, 특히 화석연료의 이용이 이산화탄소의 주된  배출원으로 꼽히고 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인정해주고 그 권리를 국제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반영하여 국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제도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이다.


   과거의 경제학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나 시장과 관련된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학은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들, 언뜻 보아 경제적이 아닌 것들까지 개인의 손익계산 논리를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종전에 다른 학문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문제들까지 닥치는 대로 손을 대고 있다. 이제 경제학은 사회학, 범죄학, 가정학, 정치학, 법학, 교육학, 등은 물론이고 인문학과 예술분야까지 마구 밀고 들어가서 말뚝을 박고 있다. 환경경제학이니 스포츠경제학이니 문화경제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이제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미국 대학가 책방에 가서 정치학과 교과서들을 들여다보면 정치학과 교과서인지 경제학과 교과서인지 잘 구분하기 힘든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와 같이 경제학이 다른 학문분야를 마구 침범하여 휘젓고 다닌다고 해서 바야흐로 경제학 깡패시대가 왔다고 개탄하는 학자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책도 나왔다. 이 책의 서론에는 “넓은 의미에서 자연도태 되는 모든 것들은 경제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말이 나온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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